본문 바로가기

호주직장생활

[호주직장생활] 호주 IT 이야기 - 3. 호주의 고객들

전에도 썼지만 호주 고객들은 한국 고객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고객사의 분위기나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와중에도 진상이 있긴 하다. 하지만 호주에서 진상이라봤자 한국의 평범한 고객 수준.

한국 고객도 다 나쁜 건 아니고 열에 하나 좋은 고객도 있듯이
호주 고객도 열에 하나 나쁜 고객은 있다고나 할까.

1.
처음 들어오자마자 4일만에 만난 고객은 천사같은 고객 중 하나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버벅댈 때인데 다행히 일도 아주 간단한 거였고 이틀 밖에 안 봤지만 어쨌든 첫 고객이 착한 사람이 걸려서 호주는 다 이런 줄 알고 환상에 빠져 버렸다.

2.
그 다음은 내 인생 최고의 진상이었던 마카오 양아치들인데 호주 고객이 아니니 제외. 아니 그것들은 고객도 아니고 그냥 거지새끼들임.

그래서인지 마카오도 너무 싫었음.
마지막 묵었던 호텔방 빼고.



그 다음에는 착한 대만 고객이었지만 대만이니 건너뛰고 그 다음이 멜번 진상 중 하나.

그 때 그 프로젝트 팀엔 사이코가 세명 있었다.

사이코 1은 처음엔 무지 간단한 문서만 만들면 된다고 (ridiculously simple 이라고까지 하면서) 해서 정말 초 간단한 문서를 만들어 줬는데
그걸 보더니 사이코 2인 프로그램 매니저에게 히스테리를 부렸다고 한다.

그래서 사이코 2는 우리쪽 세일즈에게
"A팀을 준다더니 B팀을 줬어!"
라며 히스테리를 부리고
결국 초간단 문서는 3개월짜리 디자인 문서로 탈바꿈했다는.

하지만 우리 팀도 그 때 처음이라 잘 몰라서 버벅대기도 했고
문서도 참 민망한걸 잘했다고 내놓고 =_= 그랬으니 뭐 지금은 이해해 주기로 한다.

나는 원래 아키텍트도 아니라서 디자인은 처음에만 참여하고 나중에 임플리멘테이션 할 때 상주하러 들어갔다. 떨면서.

사이코 2는 나를 직접 괴롭혔던 건 아닌데 좀 무서운 아줌마였고;;; 툭하면 미국이랑 컨퍼런스 하자고 하고 에스컬레이션 하고 잘난척 하고 싶어하고 사소한 일도 부풀려 초 위기상황으로 만들고
자기 위치와 힘을 과시하고 확인 받고 싶어하고 주목 못받아서 안달난 사람이었다.
우리 프리세일즈가 떼쓰는 다섯살 소녀라고 별명을 붙여줬다. 물론 우리끼리.

어쨌든 그래서 그런지 그 프로젝트 팀원들도 다 별로였음.

사이코 1은 디자인에만 참여했고 임플리멘테이션 팀에는 가끔 회의만 참석했다. 근데 이 때는 엄청 친한 척 친절한 척을 해서 =_= 적응이 안됐었다. 진짜 사이코인 듯.

사이코 3은 궁금한게 너무 많아 별 쓸데 없는 사소하고 말도 안되는 것들을 꼬치 꼬치 캐묻고
무슨 안 되는 기능이 있으면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이유를 물고 늘어지며
돼야 된다고 박박 우기는 종류여서
그 이후 그 사이코와 접촉한 기술지원팀이나 프로덕트 팀에서는 아주 끔찍해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그 프로젝트 때문에 내가 멜번을 싫어하게 됐나보다. 그 때 한 3개월 정도 멜번에 아파트를 얻어 살았었다. 1-2주에 한 번 시드니로 옷 가지러 왔다갔다 하면서.

멜번이 어찌나 싫었는지 별로 구경도 안 다니고 맛있는 것도 별로 먹으러 안 다니고 거의 집에만 있었다. 멜번 사람들도 다 싫었다.

그래서 몇 장 안되는 그나마 멜번 사진. 강물이 흙탕물이라 더 싫었다. 바닷물도 별로 안 깨끗하다 흥.


프로젝트 중간에 내가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왔는데 다들 엄청 부러워 했다.
그 때 호주 애들이 미국을 무진장 동경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난 사실 미국을 좋아하지도 않고 미국 출장 가는 것도 별로인데 그 때는 왜 동경하는 지 이해가 안됐지만 이제는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호주 애들이 촌구석에 틀어박혀 살다보니 미국 특히 뉴욕을 세계의 서울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 고객사는 그 이후로도 여러 프로젝트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
그 때 있던 애들은 다 그만뒀기 때문에 만날 일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아서 이미지가 조금 좋아졌다.

3.
작년에 오랜만에 또 진상을 만났다.

2번도 은행이었고 3번도 은행인데, 아무래도 은행에 있는 애들이 좀 별로인 듯.
우리나라도 은행 고객들이 다 별로인데 은행 직원들은 뭔가 공통점이 있나보다.

하지만 1번의 천사고객도 은행이라는. 근데 1번은 좀 작은 은행이고 2,3번은 큰 은행.

하여튼 이번 진상은 우리 제품을 이미 쓰고 있는 애였는데 불평불만도 많고 비아냥대고 뭐 안된다고 하면 혼자 발끈하고 그래서
그쪽 프로젝트 매니저가 나중에 나에게 사과하곤 했다.

아마 분노 조절 장애? 경계선 인격장애? 뭐 그런게 있는 듯. 사이코 지수로 따지자면 2번의 사이코 삼총사보다 한 수 위다.

다행히 이번에 다시 프로젝트 하러 들어가니 다른 일로 옮겨갔다고 해서 기뻐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분위기 자체가 잘 웃지도 않고 인사도 잘 안하는 분위기인 듯.
그래서 가기도 싫고 재미도 없고 빨리 끝났으면 하는데 불행히도 4월까지 가야할 것 같다. 계속은 아니지만.

4.
다른 고객들은 대부분 다 착했고 무난했다. 가끔 좀 재수없는 애가 걸리긴 하지만.

은행이나 관공서 말고는 대부분 캐쥬얼한 분위기이고 비교적 융통성도 있고 크게 까다롭게 굴지도 않는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제품 문제는 기술지원팀에 연락하라고 하면 대부분 절차대로 다 한다.

가끔 나한테 직접 연락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기술지원 쪽으로 티켓을 열어주거나
아니면 한두번 대답해주고 기술지원 팀 연락처도 같이 준다. 내가 대답을 못할 때도 있으니 다음부턴 여기로도 연락할 수 있다고.

그렇게 하면 대부분 그 다음부터는 절차를 따른다.

가끔 기술지원에서 응답이 느리면 나한테 SOS 를 칠 때가 있는데
그 때 신속히 잘 해결해 주면 엄청 고마워 한다. ㅎ
우리나라 고객들은 그게 당연한 건 줄 아는데.

우리나라에서 을의 설움을 겪다가 호주로 오면 딴세상이다.
우리나라에서 갑질하던 사람들은 아마 호주에 와서 못 살지 싶다.

사람이란게 칭찬해주고 고마워하고 피드백 잘 주면 다음에 하나라도 더 잘해주고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데
알면서도 그러는건지 몰라서 그러는건지

아니면 '송곳'에서 나온 명언처럼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 그러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