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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리커젼 (Recursion), 블레이크 크라우치


오랜만에 읽은 요즘 SF.
기억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 너무 흔한 소재이지만 약간 새로운 접근 방식이었고 스토리가 좋고 흡입력이 있어서 빠져든다.

우리가 경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기억에서 나오는 것이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기억으로 이루어진다.
거의 모든 시간에 대한 SF나 이론에서 말하듯 시간은 허상이고 과거 현재 미래는 의미가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1.

2018년, 가짜 기억 증후군 (False memory syndrome, FMS) 을 겪는 사람들이 생기고 빈번한 데쟈뷰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FMS는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인생에서의 삶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인데, 너무 생생해서 꿈이나 환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어 현재의 삶에 혼란을 주는 현상이다.
이런 증상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이런 증상이 생기는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부터 약 스포





2.

헬레나는 기억을 연구하는 뇌신경 과학자로 평생의 숙원인 기억 의자를 완성한다. 기억 의자는 피시술자의 과거 어떤 지점의 생생한 기억을 바탕으로 기억 지도를 그리고 이를 다시 피시술자의 뇌에 재현하는 장치인데, 치매환자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헬레나의 고용주인 마커스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Deprivation 탱크를 만들어 피시술자가 그 안에 들어가면 DMT를 주사하여 더욱 생생한 기억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지시한다.

Deprivation tank: 감각차단 탱크, 인체온도와 같은 염수를 넣고 빛과 소리 냄새를 완전히 차단하여 그 안에 누우면 모든 감각이 차단되는 장치

DMT: dimethyltryptamine, 꿈을 꿀 때나 죽기 직전 분비되는 화학물질, 환각제



여기서부터 강력 스포





3.


마커스의 지시대로 모든 것이 완성된다.
피시술자는 탱크에 들어가서 죽음을 경험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게 재현되어 기억으로 의식이 이동하다 못해 그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 결국 피시술자는 그 기억 시점부터 다시 살게 되고 이로써 다른 타임라인을 생성한다.

그러다가 피시술자가 죽은 (미래/현재의) 그 시점이 되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두통과 코피를 흘리며 전생을 기억하게 된다.
이 전생은 죽은 기억이 되는데 이게 FMS의 원인이고, 피시술자의 인생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사회적 관계를 통해 전염되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다음부터는 흔한 과거 바꾸기와 점점 퍼지고 잦아지는 다른 생의 기억들, 집단 멘붕, 반복되는 세계의 종말 등등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흔한 소재, 약간 색다른 접근 방식, 훌륭한 스토리 텔링. 유머는 없지만 흡입력 있다. 영화로 만들기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