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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

시드니 도심 인질극

시드니 시내 마틴플레이스에 있는 린트 초콜릿 카페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

요즘 월, 화요일마다 마틴플레이스의 그 카페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빌딩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서 오늘도 역시 그리로 출근했다.

아침 열시쯤 방송이 나왔는데 린트 카페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으니 나갈 일이 있으면 그쪽으로 나가지 말고 반대쪽 길로 나가라고 했다.

그러고 몇 분 있다가는 아무도 일층으로 내려오지 말고 그 길 쪽 창문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또 몇 분 있다가 낮은 층 사람들은 위층으로 올라가고 모든 창문에서 멀리 피하라고 하며 아무도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일층으로 내려올 수도 없다고 했다.

한국 뉴스에서 보니 한국 교민이 그 카페에서 일하고 있어서 잡혀있다고 한다.

인질극 뉴스가 알려지자 매니저, 매니저의 매니저, 여기서 프로젝트 하다가 싱가폴로 간 회사 친구 등이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왔다.

특히 내가 최고의 매니저로 꼽는 매니저의 매니저인 T는 두시간마다 전화하고 문자로도 말할 사람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하고 누구 딴 사람이랑 통화하고 싶은지 물어보기도 했다. 아마 내가 불안해 할까봐 그런 것 같다.

테러범이 한명으로 알려졌고 경찰 병력이 쫙 깔려있어서 정작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밥은 어떡하냐고 매니저들이 전화해서 물어봤지만 다행히 오늘은 일주일에 두번 하는 단식날이라 저녁만 먹으면 된다 (2주 됐는데 매일 빠졌다 쪘다 난리).

한시쯤 대피할 예정이라며 짐 싸라고 하더니 노트북 끄고 짐 다 챙겨놓고 나갈 준비 하니까 아직 안 나간다고 앉아 있으라며...

이미 일할 분위기도 아니라 어떤 애들은 뉴스보고 어떤 애들은 카드게임하고 있다.

나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질 중이고.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울까. 불쌍하다. 팔도 아플텐데.

두시에 다시 지침이 내려와서 대피 안한다고 한다.
왜 이랬다 저랬다냐.

한동안 내일 아침까지 못나간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다가

다시 노트북 펴놓고 뉴스나 보고 있는데 3시쯤 우리층이랑 다른층 하나만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저층에서 하나 고층에서 하나 골랐나보다. 엘리베이터 혼잡할까봐 한 층씩 내려보내는 듯.

밖으로 나오니 폴리스 라인 쳐있고 길에 차 다 막아놓은 와중에 구경꾼들이 폴리스 라인 밖으로 몰려있다.

매니저들이 택시타고 가라고 했는데 택시도 없고 귀찮아서 그냥 기차타고 집에 가는 중.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 진짜 무섭고 힘들겠다 아침부터 벌써 여섯시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범인과 직접 얘기도 못해봤다고.

추가: 지금 방금 인질 세명 나왔다고 함. 어떻게 풀려난건지는 모름.

추가 2: 호주시간 17:00 방금 두명 더 풀려남. 린트 여종업원 둘이라는 걸 보니 한국인 풀려난 듯. 풀려난 지 도망친 건지는 아직 모르지만 풀려나지 않았을까. 막 동양인 여자 뛰어나오는 모습이 찍혔음.

추가 3: 지금 경찰에서는 협상에 방해가 되고 위험할 수 있다며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몇 명이 잡혀있고 누가 잡혀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요구사항이 뭔지, 탈출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탈출했는지 모두 비밀이다.

범인이 인질들을 통해 언론사들 SNS로 요구사항을 보내고 어떤 언론은 영상까지 받았다는데도 아무도 공개 안하고 방송을 안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대단하다.

물론 그 사이 한국에서는 이미 탈출한 인질의 신상이 다 공개.

추가 4. 12월 16일. 결국 새벽에 인질 두명과 인질범 사망, 4명 부상.
어제 나온 사람들은 풀려난 게 아니라 탈출한 거였고, 새벽에 여섯명 추가로 탈출, 곧이어 안에서 총성, 경찰 진입.
어제 탈출한 사람들 포함 총 인질은 17명.

인질범은 원래 미친놈으로 전 부인 살인 방조로 보석 상태에 있던 중이었다. 어떻게 보석이 허용될 수 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당시 판결은 증거 불충분이었다는데.
게다가 10월에도 7명 강간 혐의로 기소된 상태.
그 살인사건은 당시 파트너가 전 부인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러 이전에 뉴스에 크게 나왔었고 보석으로 풀려났다고 또 크게 나왔었다.
자칭 성직자인데 사원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또 7년 전 중동에서 사망한 호주 군인의 가족들에게 악의적인 편지를 보내 처음 경찰에 알려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소송이 7년간 진행되다가 지난 주 금요일 대법원에서 마지막 판결이 있었는데 패소했다. 감옥에서 오물을 뒤집어 쓰는 등 일련의 고난들이 있었고 이 판결이 결정적인 촉발제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슬람 깃발을 내세우고 자신이 IS 일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번 일로 무슬림들이 대중교통에서 타겟이 될 것을 우려해 트위터에서는 #illridewithyou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I'll ride with you, 대중교통 같이 타고 힘이 되어 주겠다는 의미.
사실 무슬림이라고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착한 무슬림이 더 많을테고 또 무슬림이라고 다 같은 사람들이 아닌데 이런 사건이 나면 괜히 위축될 것 같다. 이런 일이 전세계적으로 한 두번이 아니니 편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추가 5: 사망자 중 남자는 매장 매니저로 범인과 싸우다 죽었다고 한다.

추가 6: 아마 다른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게 범인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인질극 진행 당시, 잡혀있지 않던 다른 직원이 인터뷰 할 때 그 사람은 평소에도 성격이 좋아서 손님들한테 항상 웃고 친절했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처음 본다며.

한 번은 어떤 아이가 부활절 토끼 초콜렛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던가 하여튼 그래서 부활절에 자기 매장으로 그 가족을 불러서 대접하고 부활절 초콜렛 선물세트를 만들어 나눠주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지면 희생자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찬양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이 사람은 진짜 진국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