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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

[호주 생활] 박싱데이

1.

휴일인데 할 일도 없고 갈 데도 없고 해서 미친척하고 시내에 나가봤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박싱데이는 원래 크리스마스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날인데
뭐 그런 전통은 요즘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고 (안 준다기 보다 꼭 박싱데이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전에 서로 서로 챙기는 듯)
호주 최대의 세일 데이로 더 자리잡은 것 같다.

처음 호주에 살러 온 지 얼마 안되어 크리스마스가 왔는데, 아직 호주의 물가에 적응도 못했고 돈도 못 벌 때라 박싱데이 대 세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살던 아파트 바로 앞에 큰 웨스트필드 쇼핑센터가 있어서, 박싱데이 날 작정을 하고 쇼핑센터를 싹쓸이하리라는 일념으로 장바구니 달린 트롤리를 끌고 쇼핑센터에 갔는데
세일은 커녕 문도 안 열었다는 =_=

황당하고 허무해서 근처를 다 돌아다녀 봐도 문 연 가게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싱데이 때는 시내와 본다이 등 일부 한정된 지역들에서만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근로자들이 쉴 수 있게 하려는 것이겠지.
호주의 쇼핑센터들이 5시면 다 문을 닫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목요일을 제외하면 시내 쇼핑센터도 7시정도에는 문을 닫는다.

2.

박싱데이 때 시티에 있는 백화점과 웨스트필드는 새벽 다섯시부터 문을 연다. 밤새워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대부분은 아시안이고 중동계열도 꽤 있다. 백인들은 가끔 보인다.

작년에도 박싱데이에 시내에 가 보긴 했는데 세일 안하는 네스프레소만 사온 터라 정작 쇼핑센터 안을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사람이 많은 건 알았지만 좀 늦게 가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어머.


살다 살다 호주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본다. 오후 세시쯤 갔는데도 좀 인기 있는 브랜드나 명품 브랜드 앞에는 어김없이 줄을 길게 서 있고 화장실 한 번 가려면 2-30분은 기다려야 했다.
결국 쇼핑센터에서 뭘 사는 건 포기하고 구두나 사러 락포트에 갔는데 뭐 이미 물건도 없고...
결국 QVB에서 마카롱이나 사가지고 집에 왔다.


아드리아노 줌보, 매우 유명한 파티쉐라고 어떤 블로그에서 봤는데
본점이 아니고 지점이라 그런가. 이렇게 맛없는 마카롱은 생전 처음 먹어본다.
맛없는 정도가 아니라 쓰레기 수준이다. 필링은 너무 많고 겉도 바삭하지 않고 속도 쫀득하지 않고 달기만 더럽게 달고
난 한번도 베이킹조차 안 해봤지만 내가 만들어도 이보단 맛있을 것 같다. 저 참담한 비주얼만 봐도 답이 나왔어야 했는데 유명 파티쉐라는 데 속아서 ㅠㅠ
어쨌든 QVB에 있는 줌보에선 마카롱 절대 사먹지 마시길.

3.

쇼핑하러 가기 전에 오랜만에 락스 뢰벤브로이에 들러 낮술을 마시기로 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인데 맥주 맛이 좋아서 시드니 사람들도 좋아한다. 역시 맥주는 독일이지 암.


간단하게 모듬 소시지 안주. 가격은 좀 비싸다. 드래프트 500ml 한 잔에 13.4불. 소시지가 애피타이저 사이즈인데 31불.

언제 봐도 기분좋은 오페라 하우스. 락스쪽 서큘러 키에서 보이는 풍경.


락스 거리. 아무리 박싱데이지만 관광객들만 해도 북적거려야 하는데 웬일로 이렇게 사람이 없나 했더니 다들 시내 쇼핑센터에 가 있었던 모양이다.


시내 지나가다, 윈야드 역 맞은 편 앤젤 플레이스. 빈 새장들이 하늘에 매달려 있다.


이 바로 옆에는 시드니 최대의 바/클럽인 아이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어서 아직 세시밖에 안됐는데도 한껏 촌스럽게 차려입은 젊은 애들이 들어가려고 줄을 서 있었다. 차마 찍지는 못함.

오늘의 박싱데이 쇼핑 대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