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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

백만년만에 맑은 시드니

1.

1923년 이후로 가장 많은 비가 내린 4월. 23일간 비가 왔다고 한다.
모든 달을 다 따지면 2007년 6월 이후로 가장 비가 많이 온 한달이었다.

부서진 집도 있고 떠내려간 집도 있고, 지붕 뚫린 집도 많았다.

호주의 집들은 참 허접하기 그지없어서 물 새는 건 다반사에 지붕도 종종 뚫리고 베란다 난간이 부서져 사망하는 사고도 최근 가끔 있었다. 심지어 아파트 베란다 난간도 부서져서 몇달 전에 또 한명 죽었다.
어떤 아파트는 옆에 공사 현장이 있었는데 이번 홍수 때 거기 고인 물로 인해 아파트 벽 바로 옆에 싱크홀이 생겨서 주민들이 다 대피한 상태이다.

어쨌든 지긋지긋한 비는 그치고, 더불어 나의 재수없던 4월도 갔다. 딱히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지만.

2.

어제는 봄처럼 따뜻하더니 오늘은 제대로 늦가을 날씨다.
출근할 때 보통 기차역에 차를 가지고 가서 세운 후 기차를 타는데,
보통은 추워서 차에서 밍기적대다 기차 도착할 시간쯤에 나오지만
오늘은 추워도 햇볕좀 쐬려고 그냥 나와서 기다렸다. 이른 시간이라 해가 너무 약해서 그닥 보람은 없었지만.

점심시간에 밖에 나와보니 다들 양지바른 곳에 나와 앉아 밥을 먹고 있다. 평소의 두배는 되는 것 같다. 다들 햇볕이 그리웠던 게지.

외근 가는 길. 역에 도착해서 소심하게 한장


3.

호주에 와서 강제로 좋아졌던 성격이 다시 스물 스물 더러워지고 있다 -_-;;;
그러다가 문득 직장이 있다는 게 어디냐며 잠깐 수그러들곤 하지만 또 발끈해서 흥분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심해야지. 가식적으로라도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하지만 프로젝트 매니저 H는 참을 수가 없다. 스케쥴 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자기가 스케쥴 잡아놓고 맨날 나한테 언제냐고 물어본다. 하루에도 몇번씩.
한꺼번에 다 물어보면 될걸 한번 메일/문자/전화할 때마다 한가지씩 물어보고, 했던 말 백번씩 하게 만든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했던 말 또 하는 거랑 또 듣는 건데. 제발 좀 다른 회사로 갔으면 싶다.

그러고 보니 멜번의 짜증나는 고객도 같은 걸 자꾸 자꾸 물어본다. 그래서 짜증이 났던 거였군.

최근 몇주간 날씨도 안좋고 할일도 별로 없고 기분도 별로라 재택 근무를 자주 했었는데
집에 혼자 있으면 집중도 잘 안되고 기분도 더 다운되는 것 같아 맑은 날은 되도록 출근을 하는것으로 해야겠다.

배가 고파서 더 짜증이 나나 --;;; 그만 굶어야 하나.

기차에서, 또는 사무실에서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같이 웃게 되는데 그러면 기분이 좀 좋아진다. 처음보다 많이 줄어든 느낌이지만 그래도 아직 그런 사람들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