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주생활

[호주생활] 국민연금 증명서 떼기

0.

어느날 ATO (호주 국세청)에서 편지가 왔다.
2011년에 해외 소득이 신고되지 않은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내역을 확인해보니 국민연금 반환 일시금과 내 한국 계좌에서 이체한 돈이었다. 호주도 해외에서 얼마 이상 금액이 이체되면 은행에서 국세청에 통보하게 되어 있나보다.

국민연금 돌려받은 걸 까먹고 신고를 안했구나하고 세금을 더 낼 생각에 우울해 있다가,
한국에서 세금떼고 받은 건데 내야하나? 싶어서 ATO에 메일로 문의를 했다.

답변이 안 오길래 초조해 하고 있던 중 다시, 국민연금인데 왜 세금을 내지, 소득도 아니고 그동안 낸거 돌려받은 것 뿐인데, 라는 생각이 들어
국민연금 홈페이지에 가서 뭐라도 증명할 내역이 있나 찾아보기로 했다.

척박한 호주환경에서 한국의 금융이나 공공기관 홈페이지에서 뭘 할 생각을 한다는 건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_=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웬만해선 생각도 안하지만 억울한 마음이 더 커서 한번 들어나 가 보기로 했다.

1.

우리집에는 컴퓨터가 네대 있다. 맥북 에어, 아이맥, 회사에서 랩용으로 사준 조립 데스크탑 컴퓨터, 10년쯤 된 후지쯔 노트북. (태블릿피씨도 하나 있었는데 그나마 그건 팔았다)

맥북에어와 아이맥에는 VM 으로 윈도우 7 영문,
회사 데스크탑에는 윈도우 서버 2008 영문,
후지쯔 노트북에는 윈도우 XP 한글판이 깔려있다.

먼저 제일 많이 쓰는 맥북에어 윈도우에서 시도를 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열고 국민연금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니 의외로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깜놀.

로그인 하기 전 둘러보니 반환 일시금 지급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메뉴가 있었다. 게다가 국문/영문 모두 가능. 분명 오년전에는 엉망진창이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감동해서 그만 맨 아래 있는 메뉴 평가에 만점을 줄 뻔했다. 하지만 아직 내 볼일이 끝난게 아니기때문에 나중에 만점을 주리라 생각하고 로그인을 했다.

2.

로그인을 하려 하니 역시나 이것 저것 깔라고 나온다. 액티브 엑스 없애라고 했더니 Exe로 바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진짜 Exe로 다 바뀌었다.
그래도 다른 브라우저 지원되는게 어디야, 생각하며 파일을 설치했다.

뭐 이것 저것 자꾸 물어보길래 다 그러라고 하고 겨우 로그인에 성공, 증명서 발급 메뉴로 가서 영문증명서를 선택하고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고 증명내역 선택하고 증명서 발급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프린터 출력 메뉴를 눌렀다.
뭐 하나 클릭할 때마다 페이지가 다시 로드된다... 다시 출력을 선택하고 최종화면으로 가서 또 출력을 눌렀다. 도대체 출력을 몇 번 눌러야 되는거야.

또 다른 화면이 나타나더니 증명서 발급 프로그램을 설치하라고 해서 아까 했는데... 하며 다시 설치. 설치하려면 인터넷 창을 다 닫아야 한다길래 다 닫고 설치.

설치가 끝나고 나서 다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로그인을 하고 몇 번의 클릭을 거쳐 다시 들어가서 출력을 눌렀더니 이런 화면이 나타났다.


뭐래...

3.

몇 번을 다시 지우고 설치하고 재부팅하고 별 짓을 다 해봤지만 안된다.

혹시나 하고 파이어 폭스로 시도해 봤는데, 암호세션이 끊어졌대나 뭐래나 이상한 페이지가 뜬다... 역시 다른 브라우저는 안되는 거였나.

두시간 동안 씨름하다가 포기하고 윈도우 2008 데스크탑에서 시도해봤다.

인증서를 먼저 복사해야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에서 피씨로 인증서를 복사하려고 하나은행 공인 인증센터에 들어갔는데

페이지가 안 열린다...

짜증을 내며 USB에 인증서를 복사해서 읽어오려고 했더니 USB를 인식을 못한다;;; 이런 싸구려 컴퓨터같으니. 아무래도 다 엎고 새로 깔아야 할 듯.

결국 포기하고 그냥 잤다.

4.

다음날 출근해서 회사 노트북으로 접속해봤다.
회사 노트북도 맥북이기 때문에 VM환경의 윈도우 7 으로 접속을 했다.

(그 전에 영문 윈도우에서 한글 깨지는 현상을 찾아보니, 언어 설정에서 유니코드 비지원 언어는 한국어로 디폴트 값을 바꿔놓으면 된다고 해서 먼저 그렇게 설정을 바꿨다).

스마트폰에서 피씨로 인증서 저장도 잘 되고, 이것 저것 설치하라는 것도 다 하고, 동의하라는 것도 다 하고, 모든 것을 허용해 주고 프린터 발급 버튼을 눌렀다.

아까 3번에서와 같은 에러가 뜬다. 대신 언어 설정을 바꿨기 때문에 한글로.

"가상환경은 지원하지 않는다"

고 한다.

털썩...

그것도 모르고 어제 두시간 동안 저 메시지가 뭘까를 고민하며 뻘짓을 하고 있었다니.

그런데 왜 가상환경을 지원하지 않는걸까. 혹시 가상환경과 가상현실을 착각한 게 아닐까. 가상환경이라고 지원 안되는 어플리케이션은 생전 처음 본다.

5.

저녁에 집에 와서 10년된 후지쯔 노트북으로 시도를 해봤다. 얘로 뭘 하려면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이제 남은 희망은 이것밖에 없었다.

한시간쯤 걸려 인증서 복사와 필요한 설치를 다 하고 드디어 증명서 선택 페이지로 갔다.
개인정보제공에 동의하고 프린터 발급 메뉴를 눌렀다.

뭔가 막 돌아가는가 싶더니 내가 체크했던 개인정보제공 동의 칸에 체크 표시가 사라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해봐도 계속 나의 동의를 거부하고 같은 페이지만 무한 반복;;;

포기하고 크롬으로 해봤다. 이건 시작부터 암호세션이 끊어졌다는 에러가 난다.

파이어폭스를 다운받아서 설치하고 다시 시도. 암호세션이 끊어졌다는 에러가 났었지만 공공의 적 Xecureweb을 허용해 줬더니 로그인까지는 잘 됐다.
그게 이 얘기였구만. 그럼 처음부터 허용해달라고 얘기를 할 것이지. 이 에러 몇번이나 봤는데.

어쨌든 로그인을 하고 증명서 선택 페이지까지 갔는데, 계속 뭘 다시 전송해야 한다면서 지혼자 무한 루프를 돌고 자빠져 있다.

결국 또 포기.

이제 남은 것은 회사 데스크탑을 윈도우 7로 밀어버리고 순결한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 보는 수밖에 없다.

2월 27일까지 ATO에 소명을 해야 하는데, 3일밖에 안 남았다. 이 상태로 가다간 3일만에 안되겠다 싶어, 전에 메일을 한 번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해서 자기 전에 메일을 한 번 더 보냈다.

이건 국민연금 가입 취소해서 반환금 돌려받은 거고 그 해의 수입이 아니니 세금을 낼 대상이 아니라고. 증명서가 필요하다면 얘기해 달라고.

답장은 기대하지 않지만 나중에 혹시 돈 내라고 하면 나 메일 보냈다며 또 버팅겨 볼 건덕지를 만들어 놓기 위해.

6.

방금 ATO에서 전화가 왔다. 절박하게 메일을 보냈더니 전화도 해 주는구나. 국민연금 반환된 거라는 증명서와 내 계좌에 그만한 돈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그 이전의 뱅크 스테이트먼트를 보내라고 한다. 4년전인데 그게 가능한가?

어쨌든 2주간 더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3월 13일까지 시간을 벌었다. 다행이군. 역시 국민연금은 수입에 포함되는 게 아닌 거 맞나보다.

집에 가서 차근 차근 윈도우 7을 새로 깔고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지.

포스팅이 너무 길어져서 이만 끗. 결과는 2주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