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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

[호주생활] 미친 시드니 집값

1.

시드니는 집값 비싸기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내가 보기엔 명백한 버블인데 아직도 집을 사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검은 돈의 도피처로 해외 부동산이 많이 이용되는데, 외국인이 집 사기 쉬운 캐나다와 호주로 몰린다고 한다.
요즘 웬만한 하우스 거래는 다 경매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실제 낙찰 받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중국계라고도 한다.
이런 버블 상황에서도 계속 돈이 들어온다는 것은 투자 목적이라기보다 돈을 어딘가 묻어두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점에서, 검은 돈 설은 신빙성이 있다. 게다가 집 한번 안 보고 에이전시를 통해 원격으로 사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거기에 놀아나는 현지인들인데, 집값이 계속 오르니 사람 심리가 불안해져서, 빨리 사야겠다는 압박감에 너도 나도 모기지를 받아 시장에 뛰어드는 바람에 벌써 몇년째 과열된 분위기다.

이 와중에 토니 애벗은, 집이 있는 사람은 집값이 더 올랐으면 할 거라며, 자기도 집이 있는 사람 입장으로서 더 올랐으면 좋겠다는 망발을 하는가 하면,
재무부 장관인 조 하키는 첫 주택 구매자들에게 주는 조언이랍시고, 돈 많이 주는 좋은 일자리를 구해 대출을 많이 받으면 집을 살 수 있다는 말이나 하고 자빠져 있다.

2.

시드니 지역의 하우스 중간값이 90만불을 넘었다고 한다. 시드니 집 중 반은 90만불이 넘는다는 얘기다. 물론 유닛이나 아파트는 하우스보다는 싸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은 백오십, 이백만불은 기본이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전망 좋은 바닷가 근처는 오백만불 넘는 집들도 많다.

https://www.realestate.com.au/neighbourhoods/state/nsw

여기에 가면 각 서버브 별 특징과 장단점, 환경, 집값 등에 대해 볼 수가 있다.


포인트 파이퍼라는 곳은 중간값이 940만불이란다;;;; 물론 하우스가 삼백여 채 밖에 안되고 집들이 다 커서 그렇긴 하지만.
전통적 강자인 보클로즈는 361만불, 더블 베이도 320만불, 모두 시내에서 가깝고 바닷가 근처로 전망이 좋다.

비정상회담에서 블레어가 호주사람들은 전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전망에 목숨을 건다. 그런데 그게 이해가 될 정도로 진짜 전망이 말도 안되게 좋다.

사실 중간값이라고 하면 그 동네에서는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평범한 집의 가격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 시장에 나오는 쓸만한 매물들을 보면 중간값 보다는 많이 비싸다.

3.

바닷가 집들이야 상류층 전용 딴 세상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중산층의 세상도 그닥 만만하지는 않다.

학군이 좋고 기차라인이 있어 교통도 괜찮은 편이고, 붐비지 않고 비교적 바닷가에서 많이 멀지도 않은 (2-30분) 노스 쇼어 라인도 (잘 사는) 중산층 가족들에게 인기지역인데,
그나마 로어 노스 쇼어보다는 싼 어퍼 노스 쇼어 지역인 핌블, 고든 등지도


중간값이 180만불 이상이다. 중간값이 180만불이라면 실제 검색했을 때 나오는 쓸만한 매물은 200만불이 넘는다고 보면 된다.

시티에서 가깝고 쇼핑센터도 많고 교통도 학군도 좋아서 한국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그렇지만 비싸서 엄두는 못내는) 채스우드.


하우스 중간값은 171만불. 유닛은 전체 중간값이 78.8만불이지만 3베드 기준 중간값은 119만불.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는 스트라스필드도 시내에서 가까운 편이라 비싸다. 176만불.


교통과 학군이 좋고, 시내에서 기차로 3-40분 정도로 많이 멀지는 않아 한국, 중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에핑도 하우스 중간값이 144만불.



4.

에핑이나 스트라스필드도 사실 유닛 가격만 놓고 보면 넘사벽까지는 아니지만 하우스 가격을 보면 본격 서민 지역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집값이 쌀 때부터 그 동네 살고 있던 사람들은 서민들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거기에 집을 사려면 가구 소득이 최소 20만불은 넘어야 할테니.

시티에서 한시간 정도 걸리는 혼즈비 지역. 최근 이민 오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비교적 저렴하지만 살기 좋은 동네다. 거리나 집값이나 소득 수준으로 봤을 때 일산이나 평촌 정도의 느낌?
좀 멀기는 해도 기차 라인이 몰리는 곳이라 대중교통으로 어디 가기 편하고, 근처에 한국 슈퍼, 한국 음식점, 대형 쇼핑센터가 있어서 생활도 편리하다.

치안도 좋고 다 좋은데 하우스보다는 유닛이나 타운하우스가 많고 집들이 비교적 작은 편이다.


방 세개 짜리 하우스 매물을 실제 검색해보면 다들 백만불이 넘어간다. 유닛도 비교적 새 아파트를 사려면 80만불 이상이다.

처음 호주에 왔을 때 혼자 렌트해서 살던 와이타라.


혼즈비 바로 옆동네이고 아파트 밀집 지역이라 최근 몇년 간 이민 온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산다. 아까 혼즈비에 있다고 한 쇼핑센터가 사실 와이타라 아파트 촌 바로 길 건너에 있는데,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걸어서 오분거리이다.
처음 정착한 곳이라 아직도 고향같은 느낌이다. 이 동네에 싸고 좋은 하우스만 있다면 다시 이사가고 싶다.

시드니는 넓고 동네는 많다. 가격도 천차만별이지만 가치 대비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5.

내 친구 하나는 내가 호주 오기 전부터 집을 사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아직도 못샀다.
친구는 사고 싶어하는데 친구 남편이 환율 떨어지기 + 집값 떨어지기 기다리느라 못 사게 해서.

환율은 떨어졌으니 성공했지만 그동안 집값이 두배 넘게 올랐다. 그리고 어차피 환율 떨어질 거라며 기다리기 시작한 게 지금 환율이랑 비슷할 때라;;; 그때 샀으면 완전 성공한건데.

내 경험상 집은 절대 예산범위 안에서 살 수도 없고,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살 수도 없다.
어차피 투자용이 아닌 다음에야 집값이 떨어지건 말건 그냥 질러야 살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금 시드니에 집을 사는 건 미친 짓인 것 같다. 나도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정도 안가고 문제가 많아서 이사가고 싶지만 이 집 팔아 살 수 있는 데가 없으니 집값이 폭망할 때까지 눌러 앉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