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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

호주 이민 기록 - 1. 초기입국

1. 초기입국이자 영구입국이면서 이별여행이었다.
돈을 아껴야 된다는 생각에 하루 백불 조금 넘는 작은 3성급 호텔에 묵었다. 방도 정말 작았는데 그래도 그 방에서 지내며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밤에는 맥주 한 잔 하며 닥터 하우스를 노트북으로 둘이서 정말 재미있게 오손도손 보곤 했다.
팀탐도 처음 먹어 보고.


2. 제일 처음 한 일은 아마 미리 신청해 놨던 은행 계좌를 activate 하러 간 일이었을 거다.
주거지 증명과 신분증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호주에서 유일하게 여권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은행 계좌였다. 한국에서 미리 인터넷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돈을 송금한 후 호주에 와서 여권을 보여주고 activate 하면 그 때부터 돈을 쓸 수 있다.

일단 주소는 호주에서 임시로 지내기로 한 친구 집 주소로 했다.그리고 나서 Bank Statement를 받으면 그걸로 일단 면허증을 받기 위한 주소지 증명을 할 수 있다.

처음 EFTPOS 카드를 만들고, 식당에서 EFTPOS 로 결제하려 했는데 승인이 거부 돼서 일단 현금으로 결제한 후 다시 은행에 가서 우왕좌왕 하는 어리버리 텔러를 한참 기다려 제대로 activate 시켰다.
뭐 이정도는 수고 측에도 안 든다.

3. 지금은 한국 면허 몇 년 이상이면 바로 호주 면허로 바꿔주지만 당시에는 필기 실기 다 합격해야 풀면허가 나왔다.
일단 필기에 합격해야 견습 면허라도 받는데, 이게 신분증이라 가장 먼저 할 일 중의 하나였다.

이민성에 가서 한국 면허 공증 받고 은행에 가서 bank statement 받고 면허 시험을 신청하러 갔는데, statement 에 이름이 약자로 되어 있어서 안된다고 하더라.
다시 은행으로 버스 타고 가서 새로 statement 받으려고 보니까 RTA (면허+차량 등록소 같은 곳) 에다 지갑을 놓고 온 거다. 지갑 안에 있는 EFTPOS 카드가 있어야 되는데.
다시 버스타고 등록소로. 지갑을 찾아 버스타고 은행으로 와서 statement를 새로 받았다. 또 버스를 타고 RTA에 가서 겨우 시험 신청을 했다.

도대체 몇 번을 왔다 갔다 한 건지. 그런데 이런 일이 그 후에도 아주 여러 번 있었다는.


4. 그 때 센터링크 찾아 삼만리도 해보고 여기 저기 뻘짓 하느라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센터링크는 어차피 해당 사항이 없어서 갈 필요도 없었는데. 그 시간에 차라리 놀러 다닐 걸 그랬다.

초기 정착비도 많이 들어가고 언제까지 백수로 지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돈 쓰는데 벌벌 떨었다. 초기 입국자에게 시드니의 물가는 거의 살인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500ml 물 한병에 최소 3천원이 넘었으니. 북유럽 갔을 때 물가에 기절했는데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 때는 환율도 높을 때라. 코펜하겐보다는 훨씬 높고 오슬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숙소가 센트럴 역 근처에 있어서 센트럴부터 타운홀 까지가 주요 동선이었다. 그 사이에 월드 타워인지 뭔지 큰 빌딩이 하나 있는데 거기 있는 쓰리 대리점에서 아이폰을 개통했다. 모바일도 프리페이드 안하고 플랜으로 가입하려면 직업이 있거나 학생이어야 하는데 한국인 직원이 어떻게 대충 해서 어찌 어찌 만들어 줬다.

그 아이폰 잘못 만지다가 Lock 걸려서 마지막날 배웅하는 공항에서 짜증내다가 겨우 풀고 헤헤거렸다. 그게 아직도 후회된다. 시간도 얼마 없는데 끝까지 짜증을..

5. 그때는 주구장창 시내에서만 돌아다녔다. 지인들 만나러 기차 타고 간 것 말고는. 달링하버, 써큘러 키, 락스를 주로 누비고 다녔었다.
좀 멀리 블루 마운틴에도 한 번 가보려고 했는데 전날 지인을 만나 술을 너무 마시는 바람에 못일어나서 실패.. 본다이나 갭팍 맨리 같은 곳이라도 다녀왔으면 좋았을 걸. 진짜 시내에서만 빙빙빙빙 돌아다녔다.. 아마 휴가라기 보다는 정착이 목적이어서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 열흘 간 내 생일과 결혼 기념일이 끼어 있었다. 결혼 기념일 이틀 후가 남편이 돌아가는 날이어서 마음이 불편한 채로 보내야 했지만.


6. 공항에서는 아이폰에 락이 걸려 한참을 짜증 내다가 풀고 나서 좀 있다 울기 시작해서 갈 때까지 눈물의 이별을 하고는 혼자 돌아오면서 선글라스 끼고 펑펑 울다가 NSW 주립 도서관으로 갔다.
가서 이력서 좀 작성하다가 며칠 신세지기로 한 친구 회사로 가서 점심 먹고 기다리다 같이 퇴근해서 집으로 갔다.

마음이 너무 허해서 평소 거의 안하던 전화를 친정 시댁 언니한테까지 마구 하고 나서야 좀 진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