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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

[호주 생활] - 호주의 기부 문화, 아니야 그건 오해야

1.
호주 사람들에게는 기부가 거의 일상화 되어 있다.
자원 봉사도 상당히 많이 하는데,
예전에 어려웠던 시절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생활화 되어
mateship 이라는 공동체 의식 같은 것이 생겼고
그래서 기부나 자원 봉사가 일상화 된 거라고 한다.

마라톤 참가하면서 기부금 모집하는 건 기본이고
아들이 학교에서 기부금 모집 달리기를 한다고 모금 하는 일도 많고
회사에서 팀이 무슨 상금을 받으면 거의 그건 기부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만 그런건가 ..)

2.

11월에는 매년 Movember 라고 하는 게 있는데
전립선암 치료, 예방 및 연구 등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는 행사로
여기에 참여하는 남자들은 11월 한달 동안 수염을 기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이름으로 기부금 모금을 한다.

그리고 끝날 때 인증 사진을 돌린다.

호주에서 처음 맞는 Movember 때는 멜번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고객사에 있는 평소 깔끔한 이미지의 C 가 수염을 듬성 듬성 길렀길래
너 수염 기르냐고 했더니 모벰버 때문에 기른다는 거다.

그래서 모벰버가 뭐냐고 했더니
그걸 모르냐며 자기가 링크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링크를 이메일로 보내줬는데
여기로 가서 자기한테 후원하면 된다고 해서
내용만 읽고 쌩깠더니
그 다음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차가워졌다.
원래 거기서 제일 친절한 아이였는데. ㅠㅠ

나중에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런 경우에 쌩까는 건 참 무례한 일인 것 같다.

분위기가 기부를 생활화하는 분위기라서
단체 메일로 돌려도 같이 일하는 경우에는 다들 참여하는데
일대일로 부탁했는데도 모른 척 했으니
베풀 줄 모르는 mateship도 없는 못돼먹은 인간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_=

그 때는 내가 그 문화를 몰라서 그런거라고!
오해였다고!!!

얘기해 주고 싶지만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것 같고
만난다고 해도 새삼 그 얘기를 꺼내서 할 수도 없을테지.

그 후로는 아는 사람의 모금에는 제깍 반응한다.

3.

기부 문화와는 다르지만 같은 mateship의 범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팀원 중에 누군가 상을 당하면
조의금을 모아 당사자가 희망하는 곳에 기부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여기서는 가족 상을 당해도
개인적으로 아주 친한 사람들이나 친척들만 가고
회사 사람들은 거의 안 간다.
아마도 고인의 지인이 아닌 경우에는 가지 않는 것 같다.

대신 매니저나 누가 뭐 도움을 줄 수 없을까 물어보면
직접 뭔가를 주기 보다는 고인과 관련된 단체에 기부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고인의 지병과 관련된 기금이라든지)

4.

오해를 산 행동을 얘기하니 떠오르는 게 또 있다.

위의 모벰버 때 보다 더 초창기 시절,
아마 입사 후 두세달 정도밖에 안됐던 것 같은데, 브리즈번에 출장 간 일이 있었다.

다른회사에서 출장 온 두 명과 함께 밥을 먹었는데,
한명은 이민온 지 오래된 이탈리아 출신이었고 한 명은 대학교때 이민 온 싱가폴 출신이었다.

왜 이민 왔는 지를 얘기하다가
내가 한국은 사람들이 돈 욕심이 많아서 다들 너무 힘들게 산다는 말을 했고
싱가폴 애가 맞장구 치며 싱가폴도 그렇다고 했다.

밥을 먹고 나서 계산을 하는데 각자 오십불씩 내고 거스름 돈을 나눠 가졌다.
이탈리아 사람이 제일 고참이고 돈도 잘 벌어서 자기가 오십불 내겠다고 했고
싱가폴 애가 거스름돈 지폐 중 하나를 가져갔다. 아마 십불짜리였을거다.

그리고 내가 십불짜리인지 지폐를 가진 후 동전을 싹 다 가져갔다.
동전이 꽤 많았는데 =_=

(호주는 2불까지 다 동전이기때문에 동전 무시할 게 아니다)

우리 회사는 출장비 중 식비가 하루에 얼마까지로 제한이 있는데
그때는 한도가 지금보다 적었고
내가 착각해서 그보다도 더 적은 금액으로 알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 달러 기준이라
당시 더 높았던 호주 달러 환율로 따지면 진짜 얼마 안됐었다.

그래서 나는 큰 금액을 식비로 청구할 수가 없었기도 하고,
싱가폴 애가 자기는 이걸 가지겠다며 지폐를 한장 가져갔기에 ,
나는 그게 다 가져간 건 줄 알고 나머지를 가져온 건데,

나중에 가면서 생각해보니 걔는 동전도 나눌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근데 가져가다 보니 동전이 너무 많았...-_-

돈 욕심 많다며 사람들 욕하다가
돈 욕심 부리는 추태를 바로 보여줬으니
얼마나 한심했을까.

지금 만나면 그건 오해라고!!!!

또 말해 주고 싶지만 역시 만날일도 없고
만난다 해도 쌩뚱맞게 그 때 얘기를 새삼 꺼낼수도 없을테지 222.

그래서 그냥 가끔씩 하이킥을 한다.

5.

또 한가지 지금 생각하면 민망한 행동.

팀 아우팅을 토요일에 한 적이 있었는데
레이저 사격장에서 편을 나눠 게임을 했다.

여자가 세명이어서 각자 자기편 사람들을 골라 팀을 만들었는데
잘할 것 같은 애들만 고르다 보니
나는 전부 백인으로만 골라버린거다 =_=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를 인종차별주의자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여기선, 특히 직장에서는 인종차별의 ㅇ자도 생각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데,
다음부턴 조심해야지.

그런데 호주 관련 카페나 블로그들을 보면
우리끼리 하는 얘기라고 하지만 인종차별적인 발언들이 너무 많다.

브리즈번은 인도애들이 많이 없어서 쾌적하다는 둥
어디는 아시안 없는 동네라 좋다는 둥

물론 어디 밖에 가서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하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으려면 생각부터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다른 인종들과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이런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적어도 호주에 살려면 엄청 까칠하고 엄격해져야 한다.
안 그러면 인종차별주의자로 찍힌다.

포럼에서 보면 어떤 사람들은
'아시안들이란, 훗.'
하면서
'(나는 아시안이니까 이래도 돼)'
라고 면피하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데
자기가 아시안이라고 해서 아시안 비하 발언을 해도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온라인 상에서 니가 아시안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니.)

어쨌든,
오늘은 끗.

역시 길게 쓰다 보니 또 얘기는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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