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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

[호주생활] 그래도 시드니가 좋은 이유

1.

20년 전 처음 여행 왔을 때의 시드니와 지금의 시드니는 전혀 다른 도시이다.
그 때 골드코스트와 시드니를 잠깐씩 여행했는데, 골드코스트도 시드니도 지금보단 훨씬 한적하고 깨끗하고 쾌적했었다.
그 때는 달링하버에도 레스토랑이 그닥 많지 않았고 허허벌판 같았는데.

10여년 전 출장 왔을 때만 해도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5-6년 전 이민을 목적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는 여기가 홍콩인가 했었다.

사람도 너무 너무 많을 뿐더러, 타운홀에서 센트럴 사이의 구간은 백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이 아시안들이다.

남한의 70배 정도 되는 땅에 남한 인구의 반 정도밖에 안 사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거며
도대체 왜 집이 모자라고 집값은 그렇게 비싼거며
도대체 왜 차는 그렇게 막히고 주차비는 그렇게 비싼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2.

나중에 알고보니 호주는 도시 집중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라고 한다. 땅은 무지하게 넓지만 다들 바닷가 근처로 도시를 형성해서 옹기 종기 모여 살고 있다.
인구가 적다보니 인프라도 일자리도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 중심으로 발달하고
아웃백 지역은 일자리도 없고 물도 없고 사람 살기가 힘들다보니 다들 도시로 몰려나와 북적대며 살고 있다.

다른 대도시들보다 시드니는 특히나 인구밀도가 높고, 아마도 제일 지저분하고, 집값도 제일 비싸다.

길도 구불구불하고 차도 더럽게 막히고 대중교통도 후지고 주차비도 비싸고
집들도 후지고 자랑거리이던 날씨도 그닥 좋은 줄 모르겠고 일년 중 반은 비 오는 것 같은데

그래도 시드니를 떠나지 못하는 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수십 개의 비치들 때문이다.

3.

호주에 와서 처음 큰 고객을 만나 프로젝트를 하면서
너무 다른 시스템과 언어의 장벽과 능력의 한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과 건너 건너 알게된 사람들을 따라 처음으로 맨리 비치에 있는 산책로에 가서 바다를 봤다.

날씨도 너무 좋았는데,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번을 우려먹는 사진.


그 때 그 산책길을 안내해 줬던 사람은 맨리의 지역 주민이었는데 =_=
내가 멜번도 좋은 것 같다고 하니, 멜번은 비치가 없는게 단점이라고 했다.

그 때는 사실 바다를 보고 힐링을 하면서도
비치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지, 라고 생각을 했었다.
멜번에 비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몇 개 있긴 한데 말이지.

4.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게 뭔 말인지 알게 됐다. 아마 호주의 대도시 중 시드니만큼 많은 비치들이 밀집해 있는 곳은 없는 것 같다.
게다가 모든 비치들이 예쁘고 물도 깨끗하다.
본다이, 맨리 등 몇몇 매우 인기 있는 비치를 빼면 대부분은 한적하기까지 하다.

요즘은 자주 가지는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힐링하러 갈 수 있는 바다가 널려 있다는 건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시드니를 떠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고 더불어 시내에 갈 때마다 지나가는 오페라 하우스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시드니 하버도.


5.

사람 사는 데 어디나 똑같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닌데? 다른데?


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어딜 가나 부정과 부패와 불의와 불공정과 불평등과 부조리가 있고
이상한 사람들도 많고 부당한 일들도 일어나며
어디든 마냥 행복하거나 마냥 불행하기만 하지는 않다.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 이라는 거지만
정도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사회의 대부분이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가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거니까.​

...사실 모든 게 정도의 차이인거지 0 아니면 100 인 경우가 어디 있겠냐고. =_=

느리고 불편하고 답답하다. 단점도 무지 많다.
그래도 아직은 사람이 더 중요한 사회이니 그 정도는 그냥 참을 수 있는 거다.

다 가질 수 없다면 제일 중요한 걸 가지는 거지.

거기에 예쁜 바다와 하늘이 덤으로 따라온다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