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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직장생활

[호주직장생활] 매니저 품평

호주 회사를 다니면서 겪은 직속 매니저는 세명, 그 중 한명은 싱가폴에 있는 싱가폴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미국계 회사를 다닐때 매니저도 무늬만 네덜란드인인 (거의) 호주 사람이었다.

1.

싱가폴에 있던 싱가폴 매니저.

이 사람은 내가 들어오고 나서 두달 후에 퇴사했기 때문에 사실 잘 모른다. 하지만 다른 호주 매니저들에 비해 동양적인 스타일- 예를 들면 아파도 꾹 참고 일하는 거 좋아하고, 아파서 안 나온다고 하면 진단서를 요구하는- 이긴 했다.

진단서를 요구했던 건 마카오 프로젝트를 할때 도무지 믿음이 안가는 홍콩 컨설턴트가 어깨가 아프다며 당일 연락해서 안 나오는 바람에 그랬던 거고, 사실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 모두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긴 했었다. 홍콩은 어떤지 몰라도 호주 지사에서는 이틀인가 사흘 연속 병가를 낼 때만 진단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만약 호주에서 그랬다면 문제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한테는 특별히 까다롭게 군 적도 없고 괜찮았던 것 같다. 특히 주말에 출장가느라 이동을 할 경우 평일 하루 재택근무를 하게 하거나 대체 휴가를 준다든지 했고, 마카오 장기 출장 동안 이스터 연휴 때는 한국에 갔다오는 비행기 값을 비용 처리 해주기도 했다 (어차피 호텔비 또는 호주에 왔다 가는 것 보다 그게 싸서이긴 했지만).
호주에 와서 처음 맞은 매니저였는데 한국 매니저들보다는 훨씬 융통성 있었기 때문에 별 불만이 없었던 것 같다. 원격에 있는데다 두달 밖에 안 지나서 잘 모르기도 했고.

2.

한국에 있을 때 호주에 있던, 호주인인 줄 알았더니 네덜란드 시민권만 가지고 있다는 매니저.

한국에서만 살았을 때는 최고의 매니저였다.
내가 한국 지사 세일즈들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 항상 내편 들어주고 -_- 한국 세일즈들로부터 나를 많이 방어해줬다.
한국 남자= 나쁜놈 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꼭 나 때문만은 아니고, 내가 입사하기 전에도 그 매니저가 한국에 출장와서 지방을 가게 됐는데, 그 지역에 번듯한 호텔이 있었음에도 한국 지사 사람들이 모텔을 잡아줘서 밤새 소음에 시달렸다든지 =_= 하여튼 안 좋은 인상만 잔뜩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내 말 잘 들어주고 내가 스트레스 받아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한달 쉬고 다시 나오라고 배려해주고 Achiever's Trip 도 보내주고 천사같은 매니저였다.

3.

호주에 와서 두번째 매니저.

스위스 출신으로 나보다 몇년 빨리 이민왔는데, 자기 아들이 스위스인인데 스키를 못탄다며 =_= 한탄한다.

아직까지 내가 꼽는 최고의 매니저. 아마 평생 안 바뀌지 싶다.
내가 하는 말도 심하게 잘 들어주고, 유머 감각도 있고, 잘난 척도 안하고, 매너 좋고 예의 바르고 합리적이고 배려심 많고 문제 해결도 잘하고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서 다 잘해준다.

눈치도 빠르고, 내가 조금이라도 불평을 하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책도 어떻게든 마련해주려고 한다.

아씨 말하다보니 진짜 아쉽다 ㅠㅠ
지금은 승진해서 내 매니저의 매니저가 되는 바람에 너무 멀어져 버렸다.

이 사람이 예전에 있던 회사에서 사람들을 많이 스카우트 해왔는데, 나라도 이 사람이 만약 회사를 옮긴다면 당장 따라갈 것 같다.

4.

지금 있는 매니저는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뭔 말을 해도 별 반응도 없고 yeah~ blah blah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직원들의 경력개발이나 동기부여보다는 당장의 비용과 성과관리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고, 절대 화를 낸다거나 흥분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뜨뜻 미지근하다​.
불만을 말해도 배려하고 해결해 주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같이 불평만 해주고 (I know your frustration 이라고 말은 하지만 해결할 의지는 없어 보이는),
되는 방법을 찾기 보다는 안되는 이유를 찾기에 힘쓴다.

항상 졸린 표정과 졸린 말투. 그래서 더 무심하게 보이는 것 같다.
휴가나 재택근무 같은 건 거의 터치 안하긴 하지만, 이전 매니저는 개인 휴가가 우선이었는데 지금 매니저는 프로젝트 일정을 먼저 따진다.
그리고 직원 평가도 이전 매니저에 비해 박하다. 자기 스스로도 고객 만족도 설문 조사 같은 거 할 때 점수 짜게 주는 스타일이라며;;;

어쨌든 내가 새로 담당하기로 한 솔루션 교육이 싱가폴에서 있는데, 거기 보내 달라고 네 번을 말했지만 이런 저런 핑계를 대가며 안 보내주고 있다.
어떻게든 안 보내려고 없던 프로젝트도 억지로 일정을 꿰어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만약 프로젝트가 없는데도 안 보내준다면 이전 매니저인 3번에게 얘기해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사실 그 솔루션이 잘 팔리지 않을 것 같아서 교육 받으나 마나 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안 보내려는게 너무 괘씸하기도 하고,
3번 매니저가 안가는게 좋다고 말한다면 신뢰가 가지만 현재 매니저에게는 기본적으로 직원을 케어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 같아서 신뢰가 가지 않기도 한다.

3번 매니저는 불만을 얘기하면 진지하게 들어주고 항상 성의 있는 답변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4번 매니저는 공감하는 척 하지만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는 없어보인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어차피 교육 받아도 쓸모 없을 것 같기도 해서 그냥 가만히 있는게 나을 것 같지만,
항상 이렇게 참자 하고 마음을 다스리다가 어느새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불평은 주로 이메일로).

내가 그동안 너무 좋았던 3번 매니저에게 Spoiled 돼서, 지금 매니저도 좋은 편인데 복에 겨운 불평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배가 불렀나보다, 가늘고 길게 가려면 튀면 안되는데. 그냥 나도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해야할텐데.

5.

뜬금없이 또 음식 사진 투척.

멜번 출장 갔다가 원래 랍스터 롤이라는 걸 먹으러 시내로 나가려 했는데, 마침 또 서던크로스 역 앞에서 트램 사고가 발생해서 스펜서&콜린스-플린더스 간 트램이 안 다녔다.
그 전날엔 택시를 탔더니만 3.4km 거리를 한시간 반 걸려서 오는 바람에 트램을 탄 거였는데,
사고나서 안간다고 걸어가라는 바람에 호텔까지 걸어감. --;;

다시 걸어 나가긴 너무 멀어서 그냥 짐보&렉스에서 삼겹살 구이.


​요즘 일진이 왜 이래. 올해가 빨리 후다닥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 더불어 매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