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주직장생활

[호주직장생활] 호주 IT 이야기 - 2. 프로젝트와 문서

0.
우리 회사는 소프트웨어 회사이고 만들어진 제품을 팔기 때문에 고객사에 나가서 개발 프로젝트 같은 것을 하지는 않는다.

제품군 중 커스터마이징이 필요한 제품들이 있는데 그런 제품들을 지원하는 컨설턴트들은 물론 프로그래밍 스킬도 가지고 있고, 이런 제품군은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지원하는 제품군은 커스터마이징이 거의 없기 때문에 1주에서 길어봤자 6주 정도의 단기 프로젝트들이고
가끔 대형 고객 같은 경우 몇달에 걸쳐 간헐적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프로젝트 진행 방법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업무 범위 정하고 킥오프 미팅하고 디자인하고 설치, 테스트, 교육, 사인 오프.

큰 틀은 비슷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다르다.

1.

우리나라는 프리세일즈 엔지니어가 디자인부터 설치까지 지원해 주는 경우가 많지만
호주에서 프리세일즈는 말 그대로 세일즈가 끝나면 땡이다.

그 이후는 고객이 알아서 하든가 프로페셔널 서비스를 구매해야 한다.

우리회사 같은 경우 서비스 세일즈가 따로 있어서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업무범위 (Scope of work)와 비용을 협의하고 문서로 만들어 서로 사인을 한다.

보통은 크게 솔루션 아키텍처 디자인과 임플리멘테이션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별도로 디자인 문서를 만들지 않을 정도의 솔루션과 프로젝트 규모에서도
무진장 상세한 디자인 문서를 만든다.

미국의 우리팀 카운터파트에서 만든 디자인 문서를 보면 참 간단하고 별거 없는데
내 고객이 대부분 은행이어서 그런지 거창하게 별의별 걸 다 쓰고 앉아있다.

2.

처음에는 미국애들 문서 카피해서 대충 썼다가
고객한테 컴플레인 듣고 =_=
그 다음부턴 좀 열심히 쓰긴 했는데
내가 봐도 갈수록 문서의 품질이 좋아지고 있다.

내가 그래도 우리 팀에서 문서를 잘 만드는 편인데 (--;;;;;)
작년에 퇴사한 ANU 출신 (호주 최고의 국립대) 컨설팅 많이 하던 애가 작성하는 문서는 못 따라간다.
(그놈 자식 참 잘생기고 키도 크고 근육질에 몸매;;;도 좋았는데 머리도 좋고 일도 잘한다..)

그래도 지금의 문서 수준은 5년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해서
그 때 일주일 걸려서 만들었던 거 지금은 하루면 다 만든다.
뭐 5년동안 발전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문서가 파워포인트인데 반해
여기는 (아마 다른 나라 다 그렇겠지만) 대부분 워드로 만든다.
문서를 워드로 만드는 건 당연한 얘기인데 우리나라가 좀 특이한 듯.

또 술먹고 쓰느라 옆길로 샜다.

생각해보니 간헐적 단식한다고 하루종일 굶었는데
공짜 술 준다고 또 카지노에 와서 두 잔째 와인 흡입 중 -_-

요즘은 굶기를 밥먹듯 하다보니
굶어도 별로 배가 안고프다.

그래서 굶은 걸 까먹고 빈 속에 두잔을 마시니 취하고 머리도 아프고 속도 쓰리려고 한다 --;;

3.

서비스 세일즈가 계약을 할 때 Scope of Work (SOW)를 작성해서 사인을 하고
나중에 분쟁이 발생하면 이게 근거로 쓰인다.

우리나라도 SOW가 있긴 하지만 형식적인 문서일 뿐인데
여기서는 되도록 이걸 따르려고 노력한다.

물론 개중에 무시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나중에 불만이 제기 되거나 고객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
종종 방어의 근거로 사용된다.

약간 더 요구하는 거면 대부분 융통성을 발휘해서 해 주지만
시간과 노력이 더 들어가는 경우는 반드시 Change Request를 요구해서
돈을 더 받아내고야 만다.

4.

요즘은 우리회사도 고객 만족도를 최우선 목표로 잡고 있는데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한국에서 직장생활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고객의 기대치보다 살짝만 더 해주면 감동해서 엄청 오바하고 난리다.

기대치가 하늘을 찌르다 못해 우주까지 치솟는 한국에 비하면
정말 합리적이고 상식적이고 어떨 때는 다소 낮기까지 한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업무나 문서 요구사항이라든지 프로세스가 파악이 안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으로 -_- 어렵긴 하지만 적응이 되면 괜찮다.

물론 이건 내가 한가지 제품을 오래 했기 때문에 제품을 잘 알아서 가능한 거긴 하다.

제품을 모르면 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내가 자발적으로 이직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다른 회사에 가면 다시 제로셋이 되기 때문에 ㅠㅠ

하지만 한국 고객은 고마워 할 줄도 몰라서 별로 재미도 없고 잘해주고 싶지도 않다. 열심히 하나 대충 하나 평가는 똑같기 때문에.

5.

이 포스팅을 며칠에 걸쳐서 조금씩 쓰고 있는데
처음에 무슨 얘길 하려고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지금 와인 두잔에 헤롱대고 있는 중이라 더욱더.

내가 좋아하는 멜번 맛집 중 멜번에만 있는 특별한 패스트푸드
슈니츠에서 슈니첼 (치킨까스 비슷) 과 코울슬로를 사와서 안주삼아 먹고 있는 중. 술은 이미 다 마셨는데 술 따로 안주 따로.
​​​


여긴 슈니첼도 맛있지만 감자칩이 진짜 맛있는데
배부르고 살찔까봐 감자칩은 포기하고 코울슬로로 대신하다보니 성에 안차서 다시 가서 칩을 사올까 고민 중.

출장오면 좋은 점 중 하나가 밥값과 술값이 공짜라는 것인데 (밥과 같이 먹는 조건으로 한도 내에서)
영수증 제출하고 실비 정산하는 거라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맨날 술 먹는다는 걸 들킬 수 있다는건 단점이다.

하지만 3월까지는 크라운 시그니처 골드 멤버십으로 맥주와 와인을 공짜로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미리 클럽 라운지에 가서 드링크를 하고 밥을 먹으면 내가 술 먹었는지 모른다 우하하.

하지만 머리가 아프니 내일은 먹지 않겠다.

무슨 얘기 하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니까
나중에 생각나면 더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