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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직장생활

[호주 직장 생활] 회사 사람들 이야기 1.

1. 우리회사는 미국계 글로벌 회사다.
내가 있는 사업부는 원래 다른 회사였는데 내가 입사하기 몇 년 전에 인수합병돼서 사업부로 전락;;;

법적으로는 법인이 아니지만 브랜드 가치가 높아서 우리 사업부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옛날 회사 이름을 그대로 쓴다.

내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아직 회계나 조직체계, 시스템같은 것들이 완전히 합쳐지기 전이어서,
금요일마다 마시는 맥주 및 와인, 기타 음료 전용 우리 냉장고도 있었고,
연말에 우리끼리 따로 파티도 하고,
해외에서 팀 워크샵 같은 것도 자주 하고 그랬었는데
회계가 통합되고 나선 그딴 거 없다.

회사에서는 해마다 더 강력한 비용 절감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원래는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_- 말하다보니 열받네.



2.호주에서 이민자들이 처음 직장을 구하기에는
작은 호주 회사보다는 큰 글로벌 기업이 훨씬 유리하다.

글로벌 기업은 다문화를 추구할 수 밖에 없고
다양성을 지향하기 위해 여러 백그라운드의 사람들을 뽑는다.

중소규모의 호주 로컬 기업들은 생각보다 상당히 배타적이어서
로컬 경력이 없으면 잘 뽑지 않는다.

처음 이민 온 사람이 로컬 경력이 어디 있냐며;;; 모든 이민자들이 성토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호주에서 몇 년 직장 생활을 해보니 한편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해외에서의 경력은 무슨 일을 했는지 실제로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고
사기꾼들이나 불성실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작은 회사에서 뒷조사를 하기도 쉽지 않을 거고
사람 잘못 뽑아서 생기는 손실에 대해 대기업보다 취약할 수 밖에 없다.

3. 그래서 결국 하고 싶었던 얘기는 우리 팀 사람들은 다양한 국적이라는 거.
이 얘길 하려고 주절 주절 긴 서론을...

지금 우리팀에는 호주 출신들이 꽤 많아졌지만 2-3년 전만 해도 호주 출신은 두명 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스위스, 영국, 아프가니스탄, 싱가폴, 한국, 중국, 홍콩, 인도, 남아공 출신들이었다.

지금은 호주 출신이 6명이나 된다;;; 그런데 인도 출신도 그만큼 늘어서 숫자가 비슷. 음 그러고 보니 최근 몇년간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

4. 스위스 출신의 T는 나보다 두달 늦게 입사한 내 매니저였는데, 정말 최고의 매니저로
사람 관리 잘하고 인맥도 넓고 평판 좋고 능력있고 똑똑하고 적당히 부지런하고 무리한 요구 하지 않고 잘 놀고 이해심 많고 융통성 있고 권위적이지 않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기타등등 진짜 괜찮은 사람이다.

결국 승진해서 지금은 내 매니저의 매니저.
스위스 사람답게 시간 안 지키는 거 엄청 싫어함;;

왜 스위스에서 이민을 왔냐고 사람들이 맨날 물어보는데
스위스가 싫어서 온 것도 아니고
스위스에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너무 깐깐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점 등이 있다고 한다.

지난 번에는 나한테 순창 고추장 사진을 메일로 보내며 이거 아냐고;;;;
그래서 당연히 안다고 했더니 어디서 파는지 아냐고 물어서 한국 가게 주소들을 보내줬더니
혹시 내가 갈 일 있으면 갈 때 하나만 사다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당연히 나는 2주에 한번씩은 한국 가게에 가니까 하나 사다줬다.

그거 어디다 쓸거냐고 물어봤더니 바베큐할 때 찍어 먹는다고 =_=

친구네 집에 놀러갔었는데 거기 쉐어하는 한국 유학생이 무슨 엄청 얇은 고기가 올라간 밥을 해줬다니 뭐라나..
아마 불고기나 불고기 덮밥을 해줬나 본데 그 때 고추장이랑 같이 먹었다며 엄청 맵지만 맛있었다는.

하긴 우리도 쌈싸먹을 때 쌈장 넣어 먹으니 고추장 찍어 먹는 것도 괜찮긴 하겠다만.

이 사람은 90년대에 호주에 워홀을 왔다던가 여행을 왔었다는데, 그 때 중고차 한 대 사서 호주 일주를 몇 달 동안 하고 갔다고 한다. 아마 고등학교 졸업하고 왔었던 듯.

그리고 스위스에서 일하다가 기술이민으로 영주권 받고 취업까지 확정짓고 호주로 넘어왔다고 한다. 

역시 계획의 사나이. 

나는 혼자 직장도 없이 무작정 와서 구했다고 했더니 용감하다고 했는데 속으론 무모하다고 생각했을 듯.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데, 자기 아들이 스위스인인데 스키를 못탄다며;;; 

이번엔 꼭 스키장에 데려가겠다고 한 게 벌써 일년이 넘었는데 배웠나 모르겠다.


(뜬금없이) 마지막 팀 워크샵을 했던 앙코르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