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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

[호주생활] 잡담, 선거, 바베큐, 센서스, 말콤 글래드웰

0.

요즘은 별다른 일이 없기도 하고
웬만한 일은 새롭지도 않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블로그에 점점 글이 뜸해지고 있다.
​(해밀턴 아일랜드는 쓰다가 귀찮아 포기)

가끔 지난 포스팅들을 읽어볼 때가 있는데
특히 최근에 쓴 글일수록 내가 봐도 뭔 말인지 모르겠는
매우 허접한 문장들이 많아서
더욱 더 뭔가를 쓸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내가 가끔 가는 어떤 의사의 블로그가 있는데
글을 너무 잘 쓰다 보니 최근 책을 몇권 내고 본격적으로 작가 겸업을 시작한 모양이다.
​(아니 의사양반이 그렇게 글을 잘 써도 되는 겁니까)

글을 정말이지 너무나도 재미있게 잘 쓰지만
왠지 모르게 글을 읽는데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매번 망설이다 가끔 큰맘 먹고 간다.
무거운 글이 많아서 그런건지 글이 길어서 그런건지
글에 감정이 너무 풍부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요즘 쓰는 글들은 특히 점점 더 감정 과잉이 되기 시작해서 조금 더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지만
이런 글들을 보다가 내 블로그에 와보면
무슨 유치원생이 쓴 글 같아서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래서 한동안 멀리하고 있었던 것도 있다.

그래도 숙제를 안한 것 같은 뭔지 모를 찝찝함에
그동안 있었던 소소한 일들이나 써볼까 하고 제목을 쓰다가
말머리를​ [호주생활]로 하고 있었는지​ [호주 생활]로 하고 있었는지 헷갈려서 글 목록을 보니
둘다 있....--;;
그래​도 [호주생활]이 최근엔 좀 더 많은 것 같아서 붙여 쓰는 걸로 결정.

1.

호주에서 처음으로 선거라는 걸 했다​ (언제적 얘기를).

하원, 상원 선거용지 두 장을 받아서
하원 선거는 모든 후보에 번호를 매겨야 하고
상원 선거는 엄청 큰 종이에 엄청 많은 당과 후보들이 나열돼 있는데
그 중 6개의 당 또는 12명(?) 후보에 번호를 매겨야 한다.
몇몇 당 서너개 빼고는 뭐하는 당인지도 모르면서 대충 썼다.

집계 방식이 복잡해서 결과가 나오는 데 오래 걸렸지만
보수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긴 했다.
하지만 상원까지 다 갈아엎는 통에 + 비례대표 방식을 도입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론 메이저 3당​(그린도 메이저로 쳐주자)은 손해를 보고
호주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폴린 핸슨의 인종차별 당이 상원 4석이나 차지하면서 막장 드라마가 돼 버렸다.

원래 상원은 3년마다 절반만 선거를 하는 건데
말콤 턴불이 압승을 자신하며 더블 디졸루션​(상 하원 모두 다시 뽑기)을 선언하는 바람에
죽쒀서 개줌.

제보다 젯밥, 꼭 먹어보고 싶었던 선거 바베큐. 기금 모금용으로 3불에 판다. 그냥 식빵에 소세지 하나 끼워주는 거지만 맛은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회사에서도 다른 기금 모금용 바베큐를 했다. 호주는 정말이지 기금 모금과 바베큐의 나라다.


2.

얼마전에 인구조사가 있었다.
처음으로 온라인 조사를 병행으로 시작했는데
"해킹​(이라고 쓰고 과부하라고 읽는다)​"으로 인해 장애가 일어나자
무려 시스템을 꺼버리고(...)
48시간동안 걍 서비스 중단...

외부 공격이라는 건 일단 다들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있고
그냥 시스템 분석과 설계와 준비가 허접했던 걸로.

인구조사 하는 데 실명과 지나친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이 있었다.
실명은 이전에도 수집했었다고 하는데​​​ (기억에 없는 건 나뿐인가)
이전에는 일년 반인가? 지나면 폐기했던 반면
이번에는 4년간 보관하고, 동의한 사람에 한해 99년까지 보관할 수도 있다고 한다.

실명을 수집하는 이유는 일단 데이터의 중복을 방지하고 무결성 체크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뭐 그런 이유라면 어느정도 납득이 되긴 한다.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소소한 얘기들은 ​Triple J Hack 을 들으면 나온다.
시사, 논쟁거리 등을 주제로 하는 팟캐스트인데
관련 담당자들이나 말빨 좋은 사람들도 많이 나오고
주 청취자가 2,30대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3.

요즘 푹 빠진 팟캐스트는 말콤 글래드웰의 ​Revisionist History​이다.
출근할 때 운동삼아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슬슬 걸어가곤 하는데
가면서 들으려고 팟캐스트를 검색하다가 1위에 있길래 그냥 아무생각 없이 들어봤더니
우왕 ㅋ 넘나 재밌는거.

누군지도 몰랐는데 (...) 알고 보니 꽤 유명한 사람이더만.

첫회에 모럴 라이센싱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람이 착한일을 한번 하면 그 다음에 나쁜일을 해도 된다는 심리가 있다고 한다. 착한일 퉁쳐서 나쁜일 하기.​
​다이어트 콜라와 쿼터 파운더 먹기​ (...​이건 난데...?)

많은 인종차별, 성차별, 각종 차별주의자들이 범하는 오류인데
어떤 사람이 편견이 없다는 크레딧을 일단 얻으면,
비록 대화 상대방이 그 크레딧에 대해 모른다고 해도 편견에 찬 발언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당시 오바마가 후보로 뽑힌 이후
오바마 지지자들이 흑인에게 불리한 관점을 더 많이 표출하는 경향이 있었다.
오바마를 후보로 지명했다는 사실로 자신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고
그 결과 인종차별 라이센스를 획득하게 되었다는 뭐 그런 심리.

나치의 유태인 학살 때에도 소수의 보호받는 유태인들이 있었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그 소수의 유태인들에게 잘 해주는 것으로
대량의 유태인 학살에 대해 스스로 면죄부를 주었다.

여성 대통령이나 여성 총리를 한번 뽑았다고 해서 여성들에게 문이 개방된 것이 아니라
한번 뽑아줬으니 다시 문을 닫아도 되는 라이센스를 준 것일 뿐으로
그 이후 또다른 여성지도자가 나오기까지는 ​​​(나온다고 해도)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사실.

​(사실 굳이 거창하게 역사적 사실로 가지 않아도 이런 예는 일상생활에서 너무나도 많다)

줄리아 길라드가 국회에서 토니 애벗을 코앞에 두고 미소지니스트라며
토니 애벗과 그 일당들의 온갖 차별적 발언들에 대해 비난하는 연설을 했는데
다시 들어보니 명연설이다.

4.

집에 있는 필립 K딕 소설들을 거의 다 읽어가기 때문에 또 한바탕 아마존에서 나머지 책들을 구입해야 하는데
그러는 김에 말콤 글래드웰 책도 한두권 사 보는 걸로.
​(10년도 더 된 책인데 매우 뒷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