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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얘기

[잡담] 일주일동안 빈둥거리기

0.

프로젝트가 끝났다. 1차만 끝났지만 2차는 새로 들어온 애가 하기로 했기 때문에 일단 원칙적으로는 바이 짜이찌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호주 생활 6년 반 동안 만났던 최악의 진상 집합소, 최악의 프로젝트.
그 동안 정신이 피폐해져서 아무것도 못했다. 시간이 있어도 무기력해서 책도 읽을 수가 없었다.

지난 6개월간 입은 정신적 신체적 손상에서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오늘이 벌써 마지막이라니 이럴수가.

1.

아무것도 안하는 최대한 게으른 휴가를 꿈꿨지만 게으른 휴가도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첫날은 머리를 하러 가려다가 담당 디자이너가 휴가라 실패.

하지만 너무 일찍 일어난데다 집이 너무 추워서 일단 나가서
몇주전에 맞춘 안경을 찾고 마그네슘 보충제와 커피 원두를 사왔다.

둘째날은 늦잠자고 일어나 집에서 빈둥대고

셋째날은 GP에 갔다가 치과에 다녀오고

넷째날은 미용실 갔다가 내시경 예약하러 스페셜리스트에 갔다오고

마지막 날인 오늘은 다시 집에서 빈둥대기.

2.

안경은 돗수가 너무 높아서 쓸 수가 없을 지경이다.

돗수 엄청 낮게 해달라고 얘기를 했는데 망할놈의 안경사가 계속 안된다고 하다가, 결국 6개월 후 다시 맞추러 오라며 낮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운전하려고 안경을 써보니 어지러워서 쓸 수가 없다.

라식 수술을 한 후 다시 시력이 나빠져, 뭔가 억울해서 될 수 있으면 안경을 안 쓰려고 하는데
요즘 급격히 시력이 나빠져서 티비 볼때와 교육 받을 때, 운전할 때만 쓴다.

안경은 사보험에서 일년에 260불 정도까지 지원이 된다.
치과와 함께 매년 사보험을 활용하는 단 두가지 항목 중 하나이다.
매년 안경테 바꾸는 게 아까우니 다음에는 렌즈만 바꿀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한국 안경점으로 가야지. 싼 맛에 스펙세이버 다녔는데 너무 별로다. 다시는 안 가겠음.

3.

지난 주에 안면 근육 경련이 일어나서 GP를 보러 갔다가
마그네슘 부족인 것 같으니 일단 피검사를 한 후 마그네슘 보충제를 먹어보라고 해서
지난 주 목요일에 피검사를 하고 이번 주 월요일에 마그네슘을 사서 먹기 시작하고 수요일에 다시 피검사 결과 확인하러 GP에게 갔다.

(처음 GP에게 갔을 때 (입가) 근육 경련이 일어나는 걸 보여주니

<드디어 재미있는 게 생겼군>

하며 좋아했었다 -______-;;;;

요즘 플루 시즌이라 하루종일 지겨운 플루 환자만 봤다고 한다)

마그네슘 보충제는 설사를 유발하기 때문에, 빈 속에 먹으면 안되고, 밥 먹다 중간에 마그네슘을 먹고 다시 밥을 먹으라고 한다.

한알부터 시작해서 설사가 나지 않는 최대량까지 늘려보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브레인 스캔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피검사는 또 따로 Pathology에 가서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원래 GP에게로 가서 결과 확인.

참 너무나 귀찮은 의료 시스템이다.

어쨌든 피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 한달 정도 마그네슘을 먹어본 후 그래도 없어지지 않으면 CT나 MRI 스캔을 하기로 했다.

CT는 메디케어로 커버가 되지만 방사능이 많고
MRI는 안전하지만 메디케어 커버도 안되고 비싸다고 한다. 360불 정도. 사보험으로도 커버가 안되나보다.

녹내장 검사하러 안과 갈 때도 사보험 적용 안되더니
사보험은 도대체 뭘 커버한다는 것인가.

아 하나 되는 거 있다. 내시경 스페셜리스트 보러갔을 때 반 정도 커버되고 사립 병원에서 하는 내시경도 커버된다.

4.

내시경은 가족력이 있어서 4년에 한번 받아야 되는데
이것도 GP 먼저 보고 Referral을 받은 후, 스페셜리스트에게 가서 상담하고 날짜 예약한 후
그 스페셜리스트가 근무하는 종합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받아야 한다.

아 정말 귀찮아 죽겠 -_-;;

뭐 하나 하려면 최소 세번을 가야 함.
되도록이면 병원을 멀리하게 하려는 의도인가보다.

결국 내 휴가는 병원을 전전하다가 끝나버렸다.
뭐 정신적 신체적 손상을 회복하기 위한 원래의 목적에는 부합하는 듯.

어쨌든 온사이트 안하게 된 이후부터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해서
이제 책도 읽고 블로그에 글도 쓸 기력도 생겼다.

5.

마그네슘 결핍에 대해 찾아보니 근육 경련이 가장 많고
급격한 시력저하, 이유없는 짜증 등도 있다고 한다.

이유없는 짜증은 태어날 때부터 있던 증상인데
나는 평생 마그네슘 결핍이었나보다.

마그네슘을 먹으면 시력도 돌아오려나.

아 그리고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면 마그네슘이 가장 먼저 빠져 나간다고 한다. 역시 6개월간 계속된 스트레스가 주범인 것 같다.

6.

집에서 빈둥대며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했다.
이작 펄만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아주 천천히. 하다가 지겨워서 대충 대충.

그리고는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으니 미친척 하고 바흐의 샤콘느를 시도해봤다.






한 마디 하고 손에 쥐가 났다.

몇 번 시도해봤지만 계속 쥐가 나서 포기.


아직 갈 길이 멀군.